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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B.C. 330 - 257?)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그의 저서인「원본(Elements)」 13권을 저술한 것은 그가 35세 - 40세 때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내용은 대체로 플라톤 학파의 테아이테토스나 에우독소스 및 그 이외의 학자들이 얻은 결과에 자기 자신이 얻은 결과들을 병합하여 집대성한 것이고 이것을 플라톤 학파의 교리에 따라서 공리, 공준, 정의, 정리의 형으로 배열하고 정리에는 엄밀한 증명을 붙인 것이다.


$ 유클리드의 공준

1. 한 점으로부터 다른 한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선분은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3. 주어진 점을 중심으로 하고 주어진 반지름을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 직각은 서로 같다.

5. 한 직선이 다른 두 직선과 맞나서 어느 한 쪽에서의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두 내각을 이루면, 그들 두 직선을 한없이 연장

시킬 때 그들의 내각이 있는 쪽에서 그들(두 직선)이 반드시 만난다.


지식의 어떤 부분을 둘러보아도 고대의 저술가 가운데 초등기하학에 있어서 유클리드만큼 근대 교육에 권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유클리드에게 "「원본(Elements)」에 의하지 않고 기하학을 배울 지름길은 없을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즉석에서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배워서 무엇에 쓰느냐고 묻는 청년한테 "돈 3 펜스를 갖다 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B.C. 287- 212)는 당시의 수학자인 동시에 물리학자이었고 그 광범한 여러 가지 실용문제에 응용했다. 특히 대중탕에서 순금의 비중에 관한 발견을 이루고 나체로 시가를 구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주로 원과 구에 대한 결과를 얻었는데 다음과 같다.

 (구의 표면적 )=(대원의 면적의 4배)

 (구의 체적) = (반경의 3 자승의 4π/3 배)

 30/71 < π< 3/7 : 이 결과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점차 증가시켜감으로써 얻어진 것이라고 한다.

구의 체적 및 표면적은 각각 구에 외접하는 원기둥의 체적 및 표면적의 2/3이다.


플라톤이 그의 강당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클리드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기하학원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수학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체계화한 것으로서 유럽에서는 19세기 말경까지 교과서로 쓰이고 있었다. 이 책은 공리에서 출발하여 차례차례로 정리(定理)를 증명하여 체계화하는 오늘날의 수학의 형식에 가까운 것을 이미 BC 3세기경에 보여주었다. 내용은 피타고라스를 비롯하여 많은 선인들의 업적이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는데 제1권에서 제4권까지가 평면기하학(平面幾何學), 제5권이 비례론(比例論), 제6권이 닮은꼴의 기하학, 제7권에서 제9권이 산술(算術), 제10권이 무리수(無理數), 제11권에서 제13권이 입체기하학(立體幾何學)이고, 끝으로 정다면체(正多面體)에 관한 문제가 설명되어 있다. 전체 13권 중 8권이 기하학인데, 당시의 수학 전반에 걸쳐 있다. 이 체계에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여러 가지 결점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수학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르키메데스의 포물선 구적(抛物線求積)은 포물선(곡선)과 그 현(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인데, 그리스 특유의 엄밀한 논법으로써, 오늘의 적분학의 기초에 관련되는 생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원기둥과 구(球)의 문제도 훌륭한 업적이며, 역학(力學)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폴로니오스는 《원뿔곡선론》(8권)에서 원뿔의 절단 자취로서의 원뿔곡선을 논하고 있다. 이 방면은 기하학원본에는 빠져 있는 분야로서 후세의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에서 2차곡선론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을, 해석기하학의 방법을 방불케 하는 생각을 써서 집대성하였다. 그리스 수학은 이론적으로 매우 뛰어났으나, 수나 계산 방면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디오판토스의 대수 방면의 연구도 역시 이론적인 면이 뚜렷하였다. 그 후 10세기경까지의 유럽은 인도나 근동 여러 나라에서 발전한 산술·대수를 수입하는 상태였다. 인도에서는 7세기에 아리아바타(걊yabhata:475∼553)가 저서 《아리아바티암:걊yabhatt봞m》(499)에서 기수법(記數法)과 천문학적 관측론을 상술(詳述)하고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는 것이 발명된 것도 이 때의 인도이다. 이탈리아의 피보나치가 이것을 유럽에 소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15, 16세기경에는 르네상스의 부흥기를 겪으면서도 수학의 면에서는 그리스 시대나, 17세기 이후에 보이는 뚜렷한 발전은 없었다. 다만, 이탈리아에서의 3차, 4차방적식의 해법이라든가, 프랑스에서의 대수학을 계통적으로 기호화한 점이 주목될 뿐이다. 유럽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천문학·물리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 현대에 이어지는 이른바 ‘과학혁명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들 각 세기의 수학의 특징을 세기별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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