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체계화한 <원론>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간혹 자신들이 배우는 수학의 내용들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수학지식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학문으로서 그 체계를 잡은 최초의 책이 있다면 그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 약간은 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BC 4세기경 유클리드가 그의 선배격인 피타고라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등이 연구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정선하고 거기에 자신의 창작을 가미하여 체계적으로 편찬한 수학 교과서로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학생들에 의해 거듭거듭 학습되어져 오고 있는 <원론, 原論, Elements>이라는 책이다.
이 위대한 수학의 걸작품은 유클리드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 그리스 수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것인데 1482년에 초판이 인쇄되어 그 이후 지금까지 1천판이 넘도록 인쇄되었으며 2천년 이상 기하학의 교과서로서 군림하고 있다. <원론>의 내용이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실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이집트인이나 바빌로니아인들은 기하학의 지식을 토지측량이나 토목공사 등 국가의 절실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와는 달리 노예제도 아래에서 아무걱정거리 없이 지낼수 있었던 그리스인들은(자유인이나 귀족들만) 명상하기를 즐기며 현실의 문제를 떠난 관념의 세계에서 '이데아'에 접근하기 위한 이성을 다듬는 도구로서 수학을 대했다. 그래서 그들은 계산술과 같은 기술은 '로기스티케'(logistike)로, 논증적인 수학, 곧 기하학은 '마테마티케'(mathematike) 로 구별하여 불렀다고 한다.
물론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의 성격도 한 몫 했겠지만 수학을 대하는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총 13권으로 된 <원론>을 만들어 냄으로써 건너편에 위치했던 고대 로마인이나 바빌로니아인들이 해내지 못한 수학의 학문적 체계화를 이루어내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보기

 기하학을 배우던 한 제자가 유클리드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딱딱한 논리로만 엮어지는 기하학을 배워서 어디에다 써먹겠단 말입니까?' 그러자 유클리드는 '그에게 동전 한 닢을 주어라. 그는 자기가 배운 것에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니까.'라고 했다. 아마 유클리드는 학문을 통하여 현실의 이익이 생기는 것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만약 유클리드가 현대에 태어나 신의 섭리라고 생각했던 <정수론>-약수와 배수, 나누는 수와 나머지와의 관계, 소수 등을 다루는 이론-이 첩보전 또는 본사와 지사 사이의 암호문 작성에 매우 유용하게 쓰여 <정수론>을 공부한 많은 수학도들이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본다면 순수의 타락이라고 개탄할 것임에 틀림없다. 많은 대학들이 기업의 후원금으로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 내는 학문의 연구에 몰두하고 또 그것이 그 대학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지금의 가치관으로서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매우 한심하게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져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여유는 그의 이런 태도 덕분일 것이며, 또 이런 태도 덕분에 수학의 학문적 체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쓴 <원론>의 제 1권의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정의를 읽어보면 이러한 점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도형을 관찰할 때, 선, 원, 각, 삼각형 등은 눈에 잘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크기가 없는 점이 있다는데에도 관심을 두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점에서 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가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명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들을 <원론>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록 17, 18세기에 걸쳐 유클리드의 수학적 형식이 어느정도 배격되기는 하였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원론>의 체계를 본 따르지 않는 것은 수학이라고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그의 업적은 수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겸손한 그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름길은 없다

옛날에는 유클리드의 저서 이외에는 다른 수학교과서가 없었으므로 유클리드를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책의 이름으로, 또는 기하학 자체로 착각하는 사람조차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정작 유클리드의 생애와 인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유클리드는 BC 330년경 시리아의 지루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다마스크 출신의 그리스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의 통치자였던 톨레미는 나일강가에 알렉산더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해 놓은 풍요롭고 미래의 가능성이 충만한 알렉산드리아라는 신도시에 지식인들을 불러 모아 알렉산드리아 대학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그 종류나 연구 영역, 조직면에서 오늘날의 대학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교육 기관이었으며 거의 1천년 가까이 그리스인들의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클리드도 아마 이때 대학의 수학과를 이끌기 위해 초빙된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641년 12월 10일 사라센의 장군 오마루가 이 도시를 함락하였을때 그리스의 학도들이 대학의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오마루 장군에게 도서관 보전을 애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듣지 않고 무려 6개월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모든 책들을 불태워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유클리드가 쓴 그리스어 원본은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으며 테온이라는 사람이 쓴 교정본의 복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한때 유클리드는 어린 톨레미의 기하학 스승이기도 하였는데 한 번은 수학공부에 지친 톨레미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터득하는 지름길을 묻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요즘도 수학 공부에 지친 많은 학생들이 한 번쯤은 해봄직한 생각이다. 어쩌면 수학을 먼저 연구한 유클리드가 나중에 공부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수학이란 체계적으로 그 단계를 밟아 나아가야만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미리 귀뜸해주는 것은 아닐까? 수학공부의 지름길을 단순한 공식의 암기쯤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새겨들을만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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